트로이 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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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로이 닐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과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한 야구 선수이다. 1986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지명되어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거쳐 1995년 일본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했다. 오릭스에서 홈런왕, 타점왕, 일본 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01년에는 두산 베어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에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와 폭행 사건 등 사생활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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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닐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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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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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트로이 닐 |
영어 이름 | Troy Neel |
포지션 | 지명 타자 / 1루수 |
출생일 | 1965년 9월 14일 |
출생지 | 미국 텍사스주 브라조리아 군 프리포트 |
타석 | 좌타 |
투구 | 우투 |
프로 입단 | 1986년 |
드래프트 순위 | MLB 드래프트 9라운드 |
선수 경력 (MLB) | |
데뷔 리그 | MLB |
데뷔일 | 1992년 5월 30일 |
데뷔 팀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최종 리그 | MLB |
최종일 | 1994년 8월 11일 |
최종 팀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팀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2년–1994년) |
선수 경력 (NPB) | |
데뷔 리그 | NPB |
데뷔일 | 1995년 4월 1일 |
데뷔 팀 | 오릭스 블루웨이브 |
최종 리그 | NPB |
최종일 | 2000년 8월 24일 |
최종 팀 | 오릭스 블루웨이브 |
팀 |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5년–1997년, 1998년–2000년) |
선수 경력 (KBO) | |
데뷔 리그 | KBO |
데뷔일 | 2001년 4월 5일 |
데뷔 장소 | 잠실 대 해태전 |
최종 경기 | 2001년 5월 20일 |
최종 장소 | 잠실 대 현대전 |
팀 | 두산 베어스 (2001년) |
수상 | |
수상 내역 | 일본 시리즈 우승 (1996년) 일본 시리즈 MVP (1996년) |
MLB 통계 | |
타율 | .280 |
홈런 | 37 |
타점 | 120 |
NPB 통계 | |
타율 | .262 |
홈런 | 137 |
타점 | 438 |
KBO 통계 | |
타율 | .193 |
홈런 | 1 |
타점 | 3 |
2. 선수 경력
트로이 닐은 1986년 MLB 드래프트 9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지명되었고, 1991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트레이드되었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오클랜드에서 주로 1루수와 지명 타자로 활약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일본 프로 야구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뛰며 1996년 일본 시리즈 우승과 일본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이후 애너하임 에인절스 산하 트리플 A팀에서 잠시 뛰었으나, 1998년 시즌 중 오릭스로 복귀하여 2000년까지 활약했다.
2001년에는 대한민국 두산 베어스에서 뛰었지만, 부진한 성적과 폭행 사건으로 시즌 중반에 방출되었다.[2]
2. 1. 메이저 리그 (MLB) 시절
트로이 닐은 1986년 MLB 드래프트 9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지명되었고, 1991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트레이드되었다.[2]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애슬레틱스에서 주로 1루수와 지명 타자로 활약했다.1992년 5월 30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2번 타자, 좌익수로 출전했으나 4타수 무안타 2삼진을 기록했다. 6월 5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바비 시그펜을 상대로 대타로 나와 메이저 리그 첫 안타를 기록했고, 7월 6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제프 머티스를 상대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그해 2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64, 3홈런, 9타점을 기록했다.
1993년에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타율 0.290, 19홈런, 63타점을 기록했다. 1994년에는 출전 시간이 줄었지만 15홈런, 48타점을 기록하며 여전한 장타력을 과시했다. 1993년에는 4타석 연속 홈런을 기록했고, 마크 맥과이어와 클린업 타선을 구성하기도 했다.
2. 1. 1. 통산 기록
년부터 년까지 3시즌 동안 통산 타율 0.280, 37홈런, 120타점을 기록했다.[2] 758타수에서 통산 타율 0.280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2. 2. 일본 프로 야구 (NPB) 시절
1995年|1995년일본어 2월 1일, 닐은 "애슬레틱스의 4번 타자"라는 명목으로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했다. 계약금과 연봉 각각 1억엔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4번 타자로 활약했다.[8] 7월 13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나리모토 도시히데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쳤다. 그 해 닐은 홈런 1개 차이로 홈런왕을 놓쳤지만,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1승 4패로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완패했고, 시리즈 5차전에서 역전 기회에 대타로 나와 전력 질주를 하지 않아 병살타로 물러나 비판을 받았다. 이노 에시게 구단 대표는 "이것은 성격상의 문제"라며 혹평했고, 일시적으로 해고가 보도되기도 했지만 막판에 철회되었다.[8] 베스트 나인(지명 타자)에 선정되었다.1996年|1996년일본어에는 4월 14일 세이부 라이온즈전(니시구치 후미야 상대), 6월 25일 닛폰햄 파이터즈전(이와모토 츠토무 상대), 9월 8일 롯데전(카와모토 이쿠유키 상대)에서 끝내기 홈런을 쳤다.[9] 4월 말부터 4번 타순에 배치되었고, 7월 6일 킨테츠 버팔로스전(그린 스타디움 고베)에서는 1경기 3홈런, 7타점을 기록했다.[8] 8월 24일부터 9월 8일까지 12경기에서 50타수 20안타, 타율 4할, 8홈런, 30타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승부 근성을 발휘했다.[8] 3번·우익수 이치로, 4번·지명타자 닐의 타선에 대해 "이 타순은 최고다. 이치로는 리그에서 출루율이 가장 높은 타자이고, 나도 지금은 매우 편하게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8] 홈런왕과 타점왕을 획득하며 오릭스의 리그 2연패에 기여했다.
1996년 일본 시리즈에서 닐은 17타수 3안타(타율 .176)로 부진했지만, 3안타가 모두 2점 적시타로 6타점을 기록하며 MVP를 차지했다. MVP 인터뷰 마지막은 "'''힘내자, 고베!'''"였다.[8]
1997年|1997년일본어 10월 16일, 닐은 승부 근성이 부족한 면과 높은 연봉 때문에 해고되었다.[10] 오기 아키라 감독은 "구단 운영상,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언급했다.[10]
1998年|1998년일본어에는 메이저 리그 쿼터에 포함되지 못해 3A 밴쿠버 캐너디언스에서 뛰었다. 그러나 오릭스가 개막부터 2승 11패, 팀 타율 .217(12개 구단 최저)로 부진하자,[11] 4월 25일 오릭스와 계약에 합의,[12] 5월 8일 팀에 합류했다. 등번호는 "99"였다. 7월 5일 킨테츠와의 13차전에서 팀 통산(한큐 시절 포함) 6000호 홈런, 8월 9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1차전에서 1이닝 2홈런(프로 야구 역사상 16번째)을 기록했다. 전날 같은 경기에서도 2타석 연속 홈런을 쳐내는 등(2경기 연속 2타석 연속 홈런은 야마자키 히로유키 이후 18년 만) 다시 주포로서 활약했다. 5월 15일 다이에와의 6차전에서 4번·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지만, 경기 직전 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멤버 교체 후라 지명타자는 반드시 한 번 타석에 서야 했고, 닐은 컨디션 불량인 채로 출전, 요시타케 신타로의 공을 대충 휘둘렀는데 홈런이 되었다. 닐은 전속력으로 루를 돌았고, 하이파이브도 하지 않고 벤치 뒤로 물러가 화장실로 직행했다.[13]
1999年|1999년일본어과 2000年|2000년일본어에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2000년 9월 11일 퇴단이 발표되었다.
2. 2. 1. 통산 기록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
1992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24 | 53 | 9 | 14 | 3 | 0 | 3 | 9 | 1 | 12 | 17 | .264 | .400 | .472 |
1993 | 134 | 427 | 65 | 124 | 30 | 1 | 19 | 63 | 6 | 66 | 114 | .290 | .388 | .489 | |
1994 | 83 | 278 | 46 | 73 | 12 | 0 | 15 | 48 | 1 | 53 | 80 | .263 | .388 | .464 | |
메이저 리그 통산 (3시즌) | 241경기, 758타수, 120득점, 211안타, 45 2루타, 1 3루타, 37홈런, 120타점, 8도루, 131 4사구, 211삼진, 타율 .278, 출루율 .389, 장타율 .480 | ||||||||||||||
1995 | 오릭스 블루웨이브 | 128 | 454 | 71 | 121 | 19 | 1 | 32 | 87 | 2 | 84 | 149 | .266 | .390 | .524 |
1996 | 129 | 469 | 84 | 147 | 15 | 1 | 32 | 111 | 1 | 74 | 139 | .313 | .411 | .548 | |
1997 | 103 | 361 | 49 | 91 | 15 | 0 | 17 | 63 | 0 | 60 | 117 | .252 | .361 | .438 | |
1998 | 92 | 329 | 62 | 93 | 15 | 1 | 21 | 63 | 0 | 58 | 108 | .283 | .401 | .523 | |
1999 | 106 | 358 | 47 | 91 | 18 | 0 | 16 | 59 | 0 | 45 | 114 | .254 | .342 | .439 | |
2000 | 99 | 331 | 37 | 76 | 10 | 0 | 13 | 52 | 0 | 44 | 112 | .230 | .324 | .372 | |
일본 프로 야구 통산 (6시즌) | 657경기, 2302타수, 350득점, 619안타, 92 2루타, 3 3루타, 131홈런, 435타점, 3도루, 365 4사구, 739삼진, 타율 .269, 출루율 .374, 장타율 .487 | ||||||||||||||
2001 | 두산 베어스 | 55 | 180 | 19 | 38 | 6 | 2 | 8 | 21 | 0 | 20 | 59 | .211 | .295 | .378 |
한국 프로 야구 통산 (1시즌) | 55경기, 180타수, 19득점, 38안타, 6 2루타, 2 3루타, 8홈런, 21타점, 0도루, 20 4사구, 59삼진, 타율 .211, 출루율 .295, 장타율 .378 |
2. 2. 2. 수상 기록
연도 | 소속팀 | 수상 내용 |
---|---|---|
1996年|1996년일본어 | 오릭스 블루웨이브 | 홈런왕[8] |
1996年|1996년일본어 | 오릭스 블루웨이브 | 타점왕[8] |
1995年|1995년일본어 | 오릭스 블루웨이브 | 베스트 나인 (지명 타자)[8] |
1996年|1996년일본어 | 오릭스 블루웨이브 | 베스트 나인 (지명 타자)[8] |
1996年|1996년일본어 | 오릭스 블루웨이브 | 일본 시리즈 MVP[8] |
1996년 일본 시리즈에서 17타수 3안타, 타율 .176, 6타점을 기록했지만, 3안타가 모두 2점 적시타였기에 MVP를 차지했다.[8] MVP 인터뷰 마지막은 "힘내자, 고베!"였다.[8]
2. 3. 한국 프로 야구 (KBO) 시절
2001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으나, 부진한 성적과 폭행 사건으로 시즌 중반에 방출되었다.[2] 그해 두산 베어스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닐은 이 우승 멤버에 포함되지 않았다.[1]2. 3. 1. 통산 기록
2001년 두산 베어스에서 활동하며 17경기에서 타율 0.193, 1홈런, 3타점을 기록했다.[2]3. 은퇴 이후
2000년, 닐은 텍사스주로부터 양육비 지급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회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도피했다가 2001년 은퇴했다.[2] 이후 바누아투로 이주하여 리조트를 운영하며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 조약이 없음을 이용, 양육비 지급을 회피하려 했다.[1][2][3]
그는 "텍사스 역사상 최악의 양육비 체납자"로 불리며 거액의 양육비를 체납했고, 국외 여행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3][4][5] 바누아투 당국의 협조 거부로 시민권 획득에 실패한 그는 여권 만료 후 추방되어 미국에서 체포되었다.[2]
결국 닐은 양육비 지급 회피 혐의로 유죄를 인정할 예정이었으나, 전 부인과의 합의를 통해 빚의 85%를 감면받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3][6][7]
3. 1. 양육비 미지급 논란
2000년, 닐은 텍사스주로부터 두 자녀(아들과 딸)를 둔 전 부인에게 매달 5000USD의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2] 닐은 양육비를 지급하는 대신 국외로 도피하여 일본의 전 소속팀인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합류했다.2001년 시즌 중반에 방출된 후 야구에서 은퇴한 닐은 재혼 후 오세아니아 남태평양에 위치한 바누아투의 약 65032.13m2 규모의 섬을 구매하여 아내와 함께 리조트를 운영했는데, 그 비용은 약 150만달러로 알려졌다.[3] 그는 바누아투가 미국과 어떠한 범죄인 인도 조약도 맺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용하여 그곳에서 최소 5년간 머무른 후 시민권을 얻어 전 부인에게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으려 했다.[1][2] "텍사스 역사상 최악의 양육비 체납자"라고 불린 그는[3] 72.5만달러가 넘는 양육비를 체납했으며,[4] 결국 77.8만달러로 확정되었다.[3] 2005년, 샌안토니오의 대배심은 닐을 양육비 의무 회피를 위한 국외 여행 혐의로 기소했다.[5] 닐이 당시 바누아투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당국은 그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지만, 바누아투 당국은 닐에게 바누아투 여권을 발급하지 않아 정식 시민권을 얻는 것을 막았다.
그의 여권은 2008년에 만료되었고, 바누아투 당국은 그에게 국외로 떠날 것을 강요했다. 2008년 12월 11일, 닐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출발한 비행기에서 내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미국 보건복지부 조사관에게 체포되었으며,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재판을 기다렸다.[2] 2009년 5월 7일, 닐은 양육비 지급 회피 혐의에 대해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할 예정이었다. 닐은 최대 2년의 징역형과 25만달러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었다.[6][7]
닐은 전 부인과 11.6만달러의 일시불 합의를 맺었는데, 이는 그가 빚진 77.8만달러의 85%를 감면받은 것이다.[3] 그는 징역형을 선고받지 않고 집행유예를 받았다.[3]
3. 2. 바누아투에서의 생활
2001년 시즌 중반에 방출된 후 야구에서 은퇴한 닐은 재혼하여 오세아니아 남태평양에 위치한 바누아투의 약 65032.13m2 규모의 섬을 구매했다.[3] 이 섬에서 아내와 함께 석호가 내려다보이는 21개 객실을 갖춘 리조트를 운영했는데, 그 비용은 약 150만달러로 알려졌다.[3] 그는 바누아투가 미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용하여 최소 5년간 머무른 후 시민권을 얻어 전 부인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려 했다.[1][2]"텍사스 역사상 최악의 양육비 체납자"라고 불린 그는[3] 72만 5천 달러가 넘는 양육비를 체납했으며,[4] 결국 77만 8천 달러로 확정되었다.[3] 2005년, 샌안토니오의 대배심은 닐을 양육비 의무 회피를 위한 국외 여행 혐의로 기소했다.[5] 닐이 당시 바누아투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당국은 그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지만, 바누아투 당국은 닐에게 바누아투 여권을 발급하지 않아 정식 시민권을 얻는 것을 막았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
2000년, 닐은 텍사스주로부터 두 자녀의 양육비로 매달 5000USD를 전 부인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2] 이를 지급하지 않고 국외로 도피하여 일본의 전 소속팀인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합류했다.
2001년 시즌 중반에 방출된 후 야구에서 은퇴한 닐은 바누아투에 약 약 65032.13m2 규모의 섬을 구매하여 리조트를 운영했다.[3] 그는 바누아투가 미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용하여 시민권을 얻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려 했다.[1][2] "텍사스 역사상 최악의 양육비 체납자"로 불린 그는[3] 77만 8천 달러의 양육비를 체납했다.[3][4]
오릭스 시절 닐은 격렬한 성격으로 인해 심판 판정에 항의하거나 난투극을 벌이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야구 외적으로도 2001년 5월 서울 이태원에서 폭행 사건을 일으켰고,[14] 2005년에는 양육비 지급 회피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4. 1. 경기 중 폭력 사건
닐은 일본 프로 야구 시절, 심판 판정에 항의하거나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는 등 여러 차례 폭력 사건을 일으켰다.- 1995년 6월 9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전에서 가쓰로 히사토시의 스퀴즈 번트로 3루 주자였던 닐이 홈인할 때 포수 요시나가 코이치로에게 태클을 걸었고, 요시나가가 격앙되자 닐도 응전하여 난투 소동을 일으켰다.
- 1996년 5월 19일에는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두고 사카무라 타카야스 구심에게 폭언을 하여 퇴장 처분을 받았다.
- 1996년 6월 19일 긴테츠 버팔로스전에서는 자신이 헛스윙 삼진을 당했을 때, 긴테츠 포수 마토야마 테츠야가 공을 놓쳤고, 주워 닐에게 태그하자 마토야마에게 격노하여 폭행을 가해 퇴장 처분을 받았다.
- 1998년 7월 3일 긴테츠전에서 마키 마사키의 사구에 격앙하여 마키를 위협하는 행위를 하여 퇴장 처분을 받았다.
4. 2. 사생활 문제
2001년 5월, 서울 이태원에서 해고된 동료 외국인 선수의 송별회 도중 일반 시민과 폭행 시비에 휘말려 구속되는 사건을 일으켰다.[14]2000년, 텍사스주로부터 두 자녀의 양육비를 전 부인에게 매달 5000USD씩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2] 그러나 닐은 양육비를 지급하는 대신 국외로 도피했다. 이후 "텍사스 역사상 최악의 양육비 체납자"로 불리며,[3] 77만 8천 달러의 양육비를 체납한 혐의로 기소되었다.[3][4][5]
2005년, 텍사스 주샌 안토니오의 대배심은 닐을 양육비 지급 회피를 위한 국외 도피 혐의로 기소했다.[5] 닐은 바누아투에 거주하며 미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았음을 이용,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1][2] 하지만 2008년 여권 만료로 바누아투에서 추방되었고,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체포되었다.[14]
2009년 7월, 샌 안토니오의 연방 지방 법원은 닐에게 5년의 집행 유예 처분을 내리고 77만 9천 달러를 지불하도록 명령했다. 2010년 4월, 닐은 전 부인과 11만 6천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화해했다.[3]
5. 기타
미성년 시절에는 농구에 전념했지만, 20세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두각을 나타낸 이례적인 선수이다.[1] 야구에 관해서는 매우 열심이었기 때문에 오릭스 수뇌부와 팀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1] 헤드 코치였던 나카니시는 "내가 티 배팅으로 매일 공을 던져 '거스르지 말고 쳐라'라고 했더니, 제2의 브라이언트까지는 안 돼도, 중심 타자로서 밋밋한 공은 홈런으로 만들 정도의 모습은 갖췄다"라고 회고했다.[1]
경기 출전에 관해서도 의욕적이어서, "'오늘은 쉬어라'라고 해도 '아니, 나, 나갈 거야'라고 반드시 말하는 거야. 이라부가 던지는 경기 같은 거라면 '저 포크에 당하면 감각이 이상해져서, 1주일은 컨디션이 안 좋아지니까 쉬는 게 낫잖아. 오늘은 게릴라 전법으로 모토니시 같은 선수가 나와서 이라부를 던지기 어렵게 해 놓고, 2대 1로 이기면 된다는 게임을 하는 거야. 너까지 나가서 타격을 망치면, 우리 팀은 내일부터 손해를 보잖아'라고 설득했더니 납득했다"라고 한다.[1] 퇴단 시에는 나카니시와 오기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1]
브라이언트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오기 매직"에 의해 재능이 개화한 외국인 선수이며, D・J와 함께 오릭스의 리그 2연패에 기여한 외국인 선수로서 현재에도 오릭스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1] "오기 매직"의 좋은 예로 언급되는 경우도 많다.[1]
친일파이기도 하며, 1999년, 홈 구장인 그린 스타디움 고베에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1]
참조
[1]
웹사이트
Troy Neel - Baseball's Worst Deadbeat Dad {{!}} Mini NPB Player Profile
https://www.youtube.[...]
2023-08-10
[2]
뉴스
Former A's 1B Neel charged in child support case
http://www.utsandieg[...]
2013-06-27
[3]
뉴스
Baseball playing dead beat dad Troy Neel still gets away with it
Clarity Digital Group LLC
2010-04-20
[4]
웹사이트
CS Evader: Troy Neel
http://www.oag.state[...]
Texas Attorney General
2008-12-14
[5]
뉴스
Ex-Big Leaguer Pleads Not Guilty In Texas Child Support Case
http://www.kwtx.com/[...]
KWTX-TV
2013-06-27
[6]
뉴스
Officials: Former Austinite, big leaguer, to plead in child support case
http://www.statesman[...]
Cox Media Group
2009-05-07
[7]
간행물
Cooperative Effort Reels in Texas' Most Heinous Child Support Evader
http://www.oag.state[...]
Attorney General of Texas
2013-06-27
[8]
웹사이트
「正直、日本には来たくなかった」 平成助っ人賛歌 イチローとオリックスV2打線を牽引した“筋肉マン”トロイ・ニール/平成助っ人賛歌【プロ野球死亡遊戯】
https://column.sp.ba[...]
[9]
뉴스
オリックス【きょうは何の日】1996年、ニール、パ・タイ3本目サヨナラ弾
https://origin.daily[...]
デイリースポーツ
[10]
뉴스
読売新聞1997年10月17日20面
読売新聞
1997-10-17
[11]
뉴스
読売新聞1998年4月24日大阪朝刊24面
読売新聞
1998-04-24
[12]
뉴스
読売新聞1998年4月26日18面
読売新聞
1998-04-26
[13]
문서
次の打席で代打藤本博史が送られ、ニールは結局この1打席で交代した。
[14]
웹사이트
Officials: Former Austinite, big leaguer, to plead in child support case
http://www.statesman[...]
statesman.com
201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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